판문점 선언 “다시 아버지를 그리며”

수필

판문점 선언
– 다시 아버지를 그리며 –

글 김은숙 기자(수필가, 필명 김지형)

 

2018년 4월 27일, 온 국민들의 관심이 판문점으로 쏠려있다.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TV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온종일 서성인다.
드디어 육십오 년 동안 금단의 선으로 묶여 있던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악수를 하고 다시 두 손을 잡고 함께 그 선을 넘어갔다 오는 장면이 연출되는 순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남북의 역사가 급류를 타고 새로운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고 오직 변화한다는 그 사실만이 변화한다는 변증법적 진리를 실감케 한다.’

이 글은 십팔 년 전인 2000년 남북 두 정상이 만나고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동토의 왕국’의 빗장이 열리면서 한반도의 화해 분위기가 온 세계에 전파를 탈 때, 내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수필의 일부분이다. 오늘 나는 다시 이 구절을 상기하고 있다.

그해, 이산가족이 만나고, 끊어진 철로가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찬 뉴스로 국민들의 마음은 한껏 부풀었다. 이산가족 행사 대열에 나도 아버지의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어 서둘러 남산에 있는 적십자사를 찾았었다.

그러나 그 후 남북은 다시 급속하게 냉각되고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불목의 경지로 돌아섰다. 근래에는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쏘아 올리자 미국의 사드(THAAD) 배치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고, 급기야는 4월 전쟁설까지 나돌아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그러던 차에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고 아이스하키 여자 단일팀을 성사시켜 출전하였다. 북한 삼지연 악단의 강릉, 서울 공연에 이어 우리 측의 평양 공연이 이어지는 등, 연일 민족 화해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마침내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북한은 파격적인 핵 폐기 선언과 뒤이어 종전을 선언할 것을 약속했다.

잘 나간다 했더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고 했던가? 대통령이 남북관계는 ‘유리그릇 다루듯 해야 한다’라고 했듯, 깨질까 봐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된 것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미․중․일 등 복잡한 국제정세와 맞물려, 말 한마디도 조심스런 때에 미국 관리의 요구는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려 그 모든 불이익은 우리의 몫으로 돌아왔다.

이대로 남북이 도로 얼어붙을 것인가? 실망감과 상실감에 빠져 우울하게 지내던 중 다시 희소식이 들려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가진 세기의 정상회담에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북미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관계도 긍정적으로 풀려 드디어 6월 22일 남북적십자 대표단이 금강산 호텔에서 이산가족 상봉 등 여러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회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드디어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한다는 남북공동 합의문이 채택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나는 다섯 살 때 헤어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살아오면서 친척들에게 편편이 들은 얘기들은 ‘너를 끔찍이 사랑했다’는 결론 하나였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세월이 흘러도 더욱 그리워지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나는 가끔 종로구에 있는 재동초등학교를 찾아간다. 막내 삼촌의 전언에 따르면 그곳이 아버지가 마지막 머물렀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들은 집집마다 수색하며 젊은이들을 체포했다. 큰집 마루 밑에 피신해 있던 아버지는 곧 발각되어 끌려갔다. 그날 밤 잡힌 사람들은 모두 ‘재동국민학교’로 데려갔다는 정보를 들은 막내삼촌이 이튿날 학교로 달려갔다고 한다. 운동장 가운데서 두리번거리자 이층 창문에서 내려다보던 아버지가 달려 나와 둘은 몇 마디 건넬 수가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내일 북으로 끌고 간다고 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밤으로 이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러나 그 후 아버지는 종무소식이었고 지금까지 긴 이별은 끝나지 않았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재개되어도 올해로 100세가 되신 나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희망은 거의 없다. 다만 그동안 살아계셨다면 어디서 어떻게 사셨는지 그 자취를 한 마디라도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우여곡절 끝에 한반도 전면 비핵화가 진행 중이고, 평화 무드를 타고 시베리아까지 철도가 이어진다니 얼마나 벅찬 소식인가! 들뜬 마음에, 그동안 침전됐던 아버지에 대한 혈연의 샘을 휘저어 놓은 듯 다시 그리움이 소용돌이치며 솟아오른다.

‘판문점 선언’ 이후 근 4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어 오늘(8월 20일) 1차로 여든아홉 명이 개최지인 금강산으로 떠나건만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인가보다.
“아버지! 어디서든 편히 쉬십시오.”

더 많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