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망아지 토끼

박선욱의 서재 – 시가 끄는 수레

글 박선욱 안수집사(시인)

오리 망아지 토끼
백석

오리치를 놓으러 아배는 논으로 내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아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 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두 던져 버린다

장날 아침에 앞 행길로 엄지 따라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커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너라
– 매지야 오너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 나는 산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 난 토끼 굴을 아배와 내가 막아서면 언제나 토끼 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아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용어 해설
오리치 : 오리 잡는 덫 동비탈 : 동둑(크게 쌓은 둑)의 비탈
동말랭이 : 동둑 마루. ‘말랭이’는 ‘마루’의 사투리 시악(恃惡) : 악한 성미로 부리는 악. 심술
버선목 : 버선이 발목에 닿는 부분을 뜻하는 말. 여기서는 ‘버선’으로 쓰임
대님오리 : 대님 끈. 한복 바지의 발목을 졸라매는 끈을 뜻하는 ‘대님’에 ‘오리(올)’라는 말을 붙임
행길 : 사람들이 오가는 길의 옛말. ‘한길’과는 다름
엄지: 짐승의 어미 매지 : 매애지. ‘망아지’의 평북, 함경 사투리
새하다 : ‘나무하다’의 사투리. 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거나 주워 모으다 치워 : 지워져. 얹혀

함께 읽어요
1연은 오리 사냥 이야기, 2연은 장날 풍경, 3연은 토끼몰이 이야기입니다.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떤 일과 관련된 공간이 반듯하게 놓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연의 논과 오리 사냥, 2연의 장날과 행길, 3연의 산과 토끼몰이도 잘 맞물려 있지요. 튼튼한 얼개는 읽는 재미를 줍니다. 1연의 ‘동말랭이에서 강아지’, 2연의 ‘엄지 따라 지나가는 망아지’, 3연의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얹혀)’ 있는 아이는 서로 닮은꼴입니다. 순수한 동심을 느끼게 해 주는 구절들이지요.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때 묻지 않은 옛 시골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은가요?
출전 백석 시집 『사슴』, 1936.

글 박선욱 안수집사(시인)

 

 

사진 박해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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