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바이 웬디

강혜미 기자의 영화마을

날아오르기 위한 여정의 시작
스탠바이 웬디

글 강혜미 기자

몇 년 전 <굿닥터>라는 드라마를 봤다. 주인공이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남자였는데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 의학서적을 거의 다 외우고 있는 캐릭터였다.

능력은 뛰어난 의사였지만 공감 능력도, 의사소통 능력도 부족했던 주인공은 여러 번에 걸쳐 좌절을 맛본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믿음은 결국 그를 의사다운 의사로 만들어 낸다.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많은 잡음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굳이 드라마에서 장애우를 다뤄야 하는 가에 대해 거북함을 드러낸 사람도 있었고, 허무맹랑한 스토리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방송되기 시작하면서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을 들으며 순항했고, 수많은 드라마 폐인을 만들어 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으니.

이 영화의 주인공 ‘웬디’도 자폐증을 앓고 있다. <스타트렉>에 관련된 서적을 모조리 외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도 서번트 증후군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웬디는 장애우가 모여 사는 센터에서 지내며 자립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중이다. 요일마다 정해진 옷을 꺼내 입고, 일과표에 따라 움직인다.

 

그녀는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운다. 가령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시나본 가게에서 시식을 권할 때 다양한 말투로 권해야 한다는 것이나 교통이 복잡한 마켓 가의 횡단보도는 건널 수 없다는 것 따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웬디는 마켓 가의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것이 그녀가 날아오르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스타트렉의 광팬인 그녀는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스타트렉의 시나리오 공모전을 연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후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하여 무려 427페이지에 달하는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그녀가 그토록 열심히 시나리오를 쓴 이유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만 된다면 그녀는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주말과 공휴일이 겹치면서 우편으로는 도저히 기한 내에 시나리오를 제출할 수 없게 된 거였다. 이제 웬디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직접 LA로 가서 시나리오를 제출하는 것. 익숙한 환경을 뒤로하고 용기를 낸 거였다. 작가가 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웬디의 여정이 평탄할 리가 없었다. 겨우 탄 LA행 버스에서 강아지 피트가 실례를 하는 바람에 쫓겨났으며, 아이팟과 돈을 도둑맞았고, 편의점에서 바가지를 쓸 뻔한 것을 겨우 모면했다. 얻어 탄 버스는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나고, 그녀는 병원에서 눈을 뜬다.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시나리오 제출을 위해 병원에서 탈출을 감행하지만 시나리오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최악을 순간을 맞이한다. 그런데도 웬디는 포기하지 않았다. 버려진 종이에 수기로 시나리오를 쓰고, 다시 LA를 향해 나아간다.

단 며칠의 여정이지만 웬디는 성장하고 있었다. 센터장이 정해 준 일과표가 없어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렸다.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도 그녀는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센터장이나 웬디의 언니 오드리는 그녀가 해낼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사라진 그녀를 찾아 헤매며 가슴을 졸일 뿐이었다. 그러나 웬디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해냈다. 스스로 샌프란시코에서 LA까지 찾아갔으며, 시나리오를 제출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고야 말았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던 사랑스런 조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단지 자폐아의 성장 영화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에게나 날아오를 기회가 있다. 다만 낯선 사람과 낯선 환경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가 없어 망설이는 순간에 그 기회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이 시대의 누구라도 웬디일 수 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예측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과 마주한다. 그때마다 물러서기만 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그러니 웬디처럼 용기를 내 보는 건 어떨까? 게다가 우리 뒤에는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시는 주님이 계시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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