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그린 그림

스토리를 담은 여행

푸이, 서태후, 진시황과 함께 한 중국 여행
물 위에 그린 그림

 

자금성 입장권을 받아들자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 푸이가 자금성을 보기 위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는 장면이 떠올랐다. 청의 몰락과 중화민국이 탄생되는 중국 근대화의 태풍 속을 살았던 제국의 어린 황제. 정원사가 된 노년의 푸이는 고궁 박물관이 된 자신의 황궁 자금성을 돌아보다 견학을 온 중화민국의 한 소년을 만난다. 푸이는 소년에게 소년이 묻지 않은 대답을 한다. “난 황제였었단다.”

글·사진 전영의 기자

6,352km에 이른다는 만리장성의 장대한 줄기 중 가욕관, 산해관과 더불어 천하제일의 장성 3관으로, 난공불락의 아홉 요새 중 하나로 꼽히는 거용관 장성

자금성에서 그날의 황제를 회상하며

푸이의 쓸쓸한 눈빛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인 우문을 통과하자 600년 역사의 영화를 담은 황궁 자금성이 눈앞에 펼쳐졌다. 황금색 지붕과 자줏빛 몸체를 지닌 태화전이 첫 번째로 그 위용을 떨쳤다. 태화전은 황제의 즉위식을 비롯하여 중국의 전통 의례 등을 거행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경복궁의 근정전과 비슷한 기능을 했던 곳이다. 세 살 푸이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된 곳도 태화전이다. 즉위식에서 울음을 터트렸던 푸이는 자신의 운명이 격변하는 시대의 소용돌이 중앙을 관통할 줄 직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명·청대에 걸쳐 권력의 중심지였던 자금성! 72만 평방미터의 넓이에 800여 채의 건물과 9천 칸이 넘는 방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황실 궁정인 자금성은 황제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치세 높은 곳이었다. 자금성의 치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문 앞을 서성였을까?

오늘날 황제의 허락 없이도 수많은 사람들이 황제의 뜰과 집무실을 자유롭게 오고가며 이제 이곳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날의 황제를 회상한다.

서태후의 산책로 창랑을 걸으며

이화원에 들어서자 드넓은 곤명호가 시선을 압도한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는 땅을 파서 만든 인공호로 여기서 파 낸 흙으로 60m 높이의 만수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의 전통 전각과 누각, 다리, 탑 등이 자연과 극치를 이루는 이화원은 서태후가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든 자신의 처소였다.

뱃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 드넓은 서태후의 호수 곤명호.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이화원에 살면서도 그 향기로움을 몰랐고, 황제 위의 권력으로도 행복은 취하지 못했던 서태후
인력거를 타고 북경의 옛 거리 십찰해와 전통가옥을 둘러보며 중국의 역사 속을 여행할 수 있다.

그 중 창랑이 눈길을 끈다. 창랑은 비나 눈이 올 때에도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728m에 달하는 회랑으로 천장에 서유기, 홍루몽 등 중국 고전을 주제로 한 수백 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태후의 산책로를 걸으니 감회가 새롭다. 비취와 진주로 잔뜩 치장한 서태후의 거만한 걸음걸이가 보이는 듯하다. 서태후는 이 창랑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저 곤명호처럼 자신의 세상도 영원히 푸를 줄 알았을까?

그러나 황제 위의 황제였던 서태후의 권력으로도 탐욕의 끝은 다스릴 수 없었다. 한 끼 식사에 128가지 음식을 먹었던 서태후는 자신의 생일에 너무 많은 음식을 먹어 이질에 걸려 73세에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역사는 그녀를 여후, 측천무후와 함께 중국의 3대 악녀로, 또 이화원을 건축하느라 청일전쟁에 쓰일 군자금을 빼돌려 청의 패망과 몰락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서태후의 유언이 참 아이러니하다.
“다시는 여인이 정치를 못하게 하라. 다시는 나처럼 불행한 여인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만리장성에 흐르는 두 개의 시간

이화원을 나와 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만리장성의 한 줄기인 거용관으로 갔다. 거용관 장성은 진시황제 때 정비한 곳으로 6,352km에 이른다는 만리장성의 장대한 줄기 중 가욕관, 산해관과 더불어 천하제일의 장성 3관으로, 또 난공불락의 아홉 요새 중 하나로 꼽힌다.

명대에 만들어져 청대까지 24명의 황제들이 중국을 통치했던 황궁 자금성. 오늘날 고궁 박물관이 된 자금성은 황실 물품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어 강성했던 제국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무대 효과와 화려한 춤으로 대국의 스케일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금면왕조 공연.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다.

성벽은 가파른 산새를 거침없이 질주하며 정상으로 뻗어나갔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거용관 장성.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다 보니 서로 다른 빛깔을 품은 채 이 장성을 흐르는 두 개의 시간이 다가왔다.
영원불멸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진시황과 그 야망에 동원돼 누더기 하나만 걸친 채 성벽을 이어가다 굶주림과 전염병에 쓰러져 성벽 아래 묻혀 간 진시황의 백성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을 따라 뿌리를 내린 초목들은 승자의 역사 속에 가려지고, 죽어서도 이름 하나 갖지 못한 민초들의 비애를 아는지 그 빛깔이 처연하다. 아방궁을 건설하며 불로불사를 꿈꾸었지만 50세에 객사한 진시황!

내려오는 길도 덥고 습했다. 무거운 발걸음 위로 산들바람이 불어주길 기대했지만 바람은 좀처럼 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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