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회 중심의 교회

목양실 편지

지역 사회 중심의 교회
「시 122 : 6~9」

글 정성진 위임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하비콕스는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린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기형도 시인은 <우리 동네 목사님>이라는 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밑줄을 그어야 할 것은 ‘성경이 아니라 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밑줄 긋기’보다 ‘생활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소원에 응답받는 소아적인 신앙생활에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대승적 차원의 신앙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만의 목사, 교회만의 집사가 아니라 우리 동네 목사, 우리 동네 집사가 되어야 합니다. 동네와 떨어져 고고한 빛을 홀로 발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속화된 세상에 들어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민하고, 냄새나는 시궁창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뒹굴며 지역 사회의 중심에 자리 잡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평안을 구하는 교회(시 122:6~7)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해는 단지 4년에 불과하다고 말한 역사학자가 있을 정도로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과 다툼과 분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미움, 다툼, 분열, 의혹, 오류, 절망, 어둠, 슬픔’이 있는 곳에서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로 말미암아 모든 싸움과 분쟁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주변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평안은 남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평안을 구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평안의 근원지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의견이 분분하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면 모두 잠잠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온유로 옷 입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를 받아들이면 평안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세상과 동고동락하는 교회(롬 12:15)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를 위하여 사신 예수님의 사역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에 감화 받은 간디와 톨스토이는 예수님의 삶을 따라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는 마땅히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천안함 용사들의 가족과 함께 울고,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울고, 이 시대의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아파하며 눈물 흘려야 합니다.

인권이 지켜지고, 어린아이, 노약자, 장애인들을 보호하는 나라라야 선진국이라고 말합니다. 중동의 석유 부자 나라들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선진국은 긍휼지수가 높은 나라를 뜻하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배려하고, 타 문화권을 이해하고, 나그네와 외국인을 보호하는 나라, 다시 말해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초연하고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의 심장을 가지고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 사랑의 감성을 풍성히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행 20:24)

미국에서 보수적이고 기독교 정신이 짙게 배어있는 도시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시카고를 꼽습니다. 그것은 무디가 활동했던 기반이 시키고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경건한 도시를 꼽으라면 제네바를 꼽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요 종교개혁의 완성자인 칼뱅이 통치했던 도시이기 때문에 칼뱅교회가 있고, 그가 다스렸던 의회와 여러 가지 흔적들이 수백 년 지난 지금까지 도시의 분위기를 경건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경건한 삶이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영향력을 세상에 미쳐야 합니다.
올해 우리 교단의 주제가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입니다. 거룩한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여 독야청청한 교회가 아니라 썩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정화시키고, 어두운 세상에 들어간 빛을 환하게 비추는 교회가 되자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명 바쳐 달려가야 할 길이 무엇입니까?
복음 전하고 영생의 도를 전하여 생명을 전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더 나아가 죽음을 향해가는 사람들과 죽어가는 도시를 살리는 길은 세상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미움의 문화를 사랑의 문화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음란한 문화를 거룩한 문화로 바꾸기 위하여 우리는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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