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청하소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

나를 경청하소서

글 이향아(시인, 호남대 명예교수)

경청하소서

하루를 탈 없이
건넜습니다

안 풀리는 매듭은
베고 잡니다

오늘 밤 꿈속 밝힐
불꽃같은 눈

내일 아침 돋는 해여
나를 경청하소서

– 이향아 –

잠자리에 누우면 하루를 살아낸 것이 대견하다. 대낮은 명경 같다. 수천의 눈을 뜨고서 나를 살피는 명경, 그러나 나는 늘 정대하면서도 침묵하는 그를 믿으므로 그와의 동행에 불편은 없다. 대낮은 또 숨을 데가 없는 벼랑 위의 길 같기도 하다. 개방된 만장 가운데서 은밀한 방도를 도모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내가 이만큼 대낮과 흉허물 없이 지내는 것은 터놓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가 거대한 꽃송이처럼 시시각각 잠겨 들면, 끈끈하게 젖어드는 저녁 불빛 속에서 나는 풀리지 않는 미해결의 잔해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많은 숙제를 쌓아두고도 “너 하루를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스스로 묻고 대답한다.

“그렇다, 내 하루에 빗금을 그었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깊은 밤 거울 앞에 앉으면 나는 왜 머리를 빗고 싶은지 모르겠다. 먼 길 떠날 행장을 차리듯이, 알 수 없는 꿈길을 밝히러 가는 사람처럼, 나는 설레며 잠속에 든다. 나는 밤마다 있어야 할 자리를 비워놓고 가출하는 것이다.

이부자리에 발을 뻗고 누우면 이 세상 아무도 부럽지 않고, 우주가 갑자기 조그마해진다. “별것 아니었구나, 탈 없이 건넜구나, 고맙습니다.” 날마다 그렇게 눈을 감는다.

밤은 나의 창세기, 꿈은 나의 피난처,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는 완충의 산호림, 미궁인 듯, 늪인 듯, 꿈길은 좁고 나는 거기서 길을 잃고 싶다.
날마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베고 근심 없이 잠이 든다. 풀리지 않는 매듭이야 하나둘이 아니지만, 그것이 삶이려니, 그것이 세상이려니 한다. 날이 밝으면 다시 내일의 해가 돋을 것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날마다 안심한다. 아주 마음 편하게.

나는 오래 전에 도통했거나, 영악해졌거나 아니면 능청맞은 바보가 되었나 보다.

사진 박해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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