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강혜미 기자의 영화마을

 

애써 위로하려 하지 않아도 위로를 받은 것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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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혜미 기자

이 영화가 상영되기 전 예고편을 보고는 생각했다. ‘아, 농촌 판타지를 자극하는 본격적인 귀농 영화가 나올 모양이로군.’이라고 말이다. 농촌에서 제철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해 먹는다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인 <삼시세끼>의 영화 버전 정도라고 생각한 거였다. 사계절 변화하는 농촌의 모습과 제철음식이 적당히 어우러져 나오겠거니 하고는 별 기대가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니까 얼굴이나 감상해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영화, 예상과는 달랐다. 농촌 판타지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한 사계절의 자연과 미각을 자극하는 제철음식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는 ‘나’와 ‘선택’에 관한 영화다.

주인공 혜원은 지쳐있는 상태였다. 임용고시에 낙방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남자친구는 합격을 해 버렸다. 축하의 말도 건네지 못할 만큼 마음이 고픈 혜원이 몸의 허기라도 달래고자 했을 때 마주한 것은 상해버린 편의점 도시락과 실속 없이 비어버린 냉장고였다. 결국 혜원은 고향집으로 내려간다. 배가 고파서, 그리고 마음이 고파서.

텅 비어있는 고향집에 내려간 혜원의 첫 끼니는 소박했다. 밭에서 얼어버린 배추로 끓인 된장국, 쌀독에 남아있던 한줌이 될까 말까한 쌀로 겨우 지은 밥 한 공기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혜원은 충분히 배가 불렀다. ‘집’에서 먹는 나를 위한 ‘밥’이었으므로 주린 배와 마음이 달래졌다.

이후 혜원은 고향에서의 일상을 성실히 살아낸다. ‘나, 금방 갈 거야. 며칠만 있을 거야.’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으면서. 혜원의 일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요리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식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자신, 혹은 친구를 위한 요리. 수제비와 배추지짐이, 설기떡, 막걸리, 오코노미야끼, 양배추 샌드위치, 쑥 튀김과 아카시아 튀김, 봄꽃 파스타, 오이국수를 넣은 콩국, 크림브륄레, 밤조림, 곶감 등 다양한 요리를 거침없이 해 내는 혜원을 보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특히 막걸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는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었다. 어떻게 저렇게 척척 요리를 만들어 내지? 웬만한 주부보다 나은데? 임용고시를 준비한 애 치고는 요리를 너무 잘해! 영화라고 너무 심한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친절하게도 영화는 그 이유를 납득시킨다. 고향집이 비어있는 이유와 함께 엄마를 등장시키면서 말이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혜원을 떠나버렸다. 어릴 적부터 혜원의 기분을 알아채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던 엄마는 지금껏 소식이 없다. 혜원의 마음이 고픈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혜원은 엄마가 만들어 주던 요리를 기억하며 하나하나 스스로 만들어 본다. 요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를 추억하던 혜원은 어느새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혜원의 일상 속에 요리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친구 은숙과 재하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은숙은 읍내 은행에서 일한다. 매일 상사의 흉을 보며 쓰린 속을 달랜다. 재하는 농부다. 도시에서 취업에 성공했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혜원과 일상을 공유하던 친구들은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묵과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해결한다. 은숙은 흉을 보던 상사의 머리를 탬버린으로 시원하게 내리쳤고, 재하는 태풍으로 망가진 사과밭에서 절망하지 않고 묵묵히 다시 일궈낼 것을 선택했다. 혜원도 친구들을 보며 미뤄두었던 선택의 문제와 마주한다.

과연 고향에서 보내는 사계절은 어떻게 혜원을 변화시켰을까? 그 답은 혜원의 마음이 고팠던 이유를 말하고 나서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실패를 거듭하면 위축되고 만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결국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또 치게 돼 버린다. 혜원도 그랬다. 임용고시에서 떨어지고, 편의점 알바로 근근이 생활하는 현실이,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혜원의 마음을 주리게 만들었다. 그런 혜원이 ‘집’에서 ‘밥’을 먹는 일상을 보내는 동안 변화한다. 여전히 임용고시에 떨어진 상태고, 변변한 수입이 없으며,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집밥의 힘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이상하게 집밥에 대한 향수가 있고, 집밥을 먹으면 괜히 힘이 난다. 단지 맛있는 밥이라서가 아니다. 집밥은 나를, 우리를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해 준다. 누가 먹을지도
모르는 불특정다수를 위해 만들어진 식당의 그것과는 다르다. 오로지 나를 위해 만들어진 밥. 그것은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나에게 확실한 존재감을 선물한다. 자신을 위해 제철식재료를 가지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며 혜원은 아마도 스스로가 소중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또 엄마와의 추억이 또렷해지며 엄마가 해 준 요리가, 엄마의 집밥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겠지. 또 오랜 친구들이 전해주는 온기 역시 혜원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이 영화는 그렇게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사계절을 담기위해 네 번의 크랭크인을 할 정도의 정성을 쏟은 만큼 꽤나 드라마틱한 농촌의 사계절과 배고픈 상태로 본다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맛있는 요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덤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애써 위로하려 하지 않아도 위로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힐링 영화. 이 봄, 따뜻한 위로를 받고 힘을 내 시작하고 싶다면 이 영화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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