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전차(電車)

수필

서 있는 전차(電車)

글 김은숙(수필가, 필명 김지형)

문득 이 전차를 타고 시내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전찻길 위를 댕-댕-댕 소리를 내며 한껏 여유롭게 누비고 싶다. 을지로에서 창경궁 담 길과 명륜동, 혜화동 로터리, 삼선교를 지나 돈암동 전차 종점에 내려서 옛날 우리 집으로 다시 가고 싶다

광화문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옛날 전차 한 대가 서 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차창 밖으로 남다른 감회에 젖어 바라보곤 하던 중, 오후 5시 이전까지는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모처럼 시간을 내어 찾아갔다. 열린 전차 문으로 들어선 순간, 나의 시야에는 그 옛날 전차 타던 시절의 풍경이 어제 일처럼 밀려왔다. 초록 우단이 깔려 있는 좁다랗고 긴 의자, 공중에 걸려있는 손잡이, 벽면에 붙은 광고문도 그때 그대로였다.

시간이 멈춘 그 공간에 세월을 흘러온 내가 서 있다. 나는 쉬이 내리지를 못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서울 시내를 느리게 누비고 다녔던 전차에 얽힌 젊은 날의 영상들이 하나 둘씩 스치고 지나간다.

전차를 처음 탔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9.28 서울 수복 후, 피난지 안성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나절 서울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피난 살림을 접은 보퉁이 하나를 머리에 이었고, 나는 전날 어머니가 사준 새 운동화를 신고 서울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에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전차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만원이었고 흐린 백열등 아래 사람들은 마치 팬터마임 속의 군중들처럼 어두워가는 창밖을 표정 없이 내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무표정한 모습이 왠지 낯설었던 나는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놓칠세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전차에서 만난 사람은 원수요, 기차에서 만난 사람은 지기(知己)라는 것이다.’

시인 윤동주가 1941년, 누상동 하숙집에서 연희전문까지 전차와 기차를 오가며 통학했던 시절에 쓴 수필 「종시(終始)」에 나온 구절이다. 난생 처음 탔던, 그날 밤 전차 안의 뭇 승객들의 화난 듯한 어두운 풍경을 떠올리니 그제야 시인의 말에 공감이 갔다.

기차에서는 한 자리에서 서로 몸을 비비적거리면서도 서로 “어디까지 가시나요,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하고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는데, 전차 안에서는 뚱-한 모습들이 꼭 원수를 맺은 사이 같다는 시인의 부연 묘사이다. 아마도 바쁜 출퇴근, 생업에 시달려 여유 없는 일상에서 비롯된 까닭이라고 이해가 간다.

1899년 개통되어 1968년 11월 멈춰 설 때까지 70여 년간 시민의 발이 돼주었던 전차는 이제 시대의 유물이 되어 박물관 앞에 쓸쓸히 서 있다.

1899년 5월4일 동대문에서 전차 개통식을 했다. 서대문 홍릉 간을 개설한 이유는 그 당시 홍릉에 있던 명성황후 능을 자주 가는 고종황제의 편리를 위함이었다고 한다.

초기에 호기심과 함께 인기가 높아, 몰린 인파들이 전차 위에 겹겹이 올라 탄 모습을 기록사진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2원 50전 하던 전차를 재미로 타다 전 재산을 탕진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전해질까!

50-60년대 초기는 전차의 전성기였다. 광복절에는 온통 꽃으로 장식한 꽃전차에 <8.15의 감격으로 국토통일 이룩하자>라는 플래카드를 두르고 각 초등학교에서 선발한 해방둥이들이 올라앉아 축하 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하였다.

우리 옆집 아저씨는 전차 운전사였다. 검은 제복에 테를 두른 모자, 흰 장갑에 가죽가방을 들고 출퇴근할 때면, 온 동네 사람들의 선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전차의 인기만큼이나 전차 운전사란 직업도 인기가 높은 직종이었던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어쩔 수 없어 시내 한복판을 느리게 운행하며 체증을 유발한다는 ‘교통 방해죄(?)’ 로 1968년, 반세기 이상을 시민과 함께 고락을 같이 했던 전차는 드디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해 신문지상을 통해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단편 「화수분」의 작가로 잘 알려진 전영택 선생이 을지로 4가 전차종점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것이다. 그의 소지품이라곤 주머니에 달랑 전차표 한 장뿐이었다고 한다. 집으로 가려고 전차를 타러 오는 중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문인의 사라진 뒷모습이 못내 가슴 아팠다.

그 많던 전차는 다 어디로 가고,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국립과학관에 각 한 대씩 두 대만이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이렇게라도 남아 있어 그 시절의 흔적을 회상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문득 이 전차를 타고 시내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전찻길 위를 댕-댕-댕 소리를 내며 한껏 여유롭게 누비고 싶다. 을지로에서 창경궁 담 길과 명륜동, 혜화동 로터리, 삼선교를 지나 돈암동 전차 종점에 내려서 옛날 우리 집으로 다시 가고 싶다. 그 자리에 선 채 이런 상상에 잡혀 있을 때, “그만 내려주세요!” 하는 안내 직원의 말에 놀라 허둥대며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에 뒤돌아보니 전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정물(靜物)이 되어 무심히 서 있다.

나는 “안녕! 전차!” 하며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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