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와서 보아라!’

1월의 Talk

인도네시아 선교지 탐방을 다녀와서
‘건너와서 보아라!’

글 이정희 권사

블리따르 개종자 집회에서 설교 후 동티모르 난민들에게 안수하는 정성진 위임목사

 

인도네시아로 출발

봄에 인도네시아 선교 여행을 신청했는데 7월 중순부터 오른쪽 발목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걷기가 힘들어졌다. 여러 병원을 다니며 치료했지만 발목은 점점 붓고 통증이 심해졌다. 9월이 되자 주변에서 선교 여행 가는 것을 강력히 만류했다.

사실 나도 발목 보호대를 하고 통증을 참아가며, 약 보따리를 들고 선교 여행을 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또한 일행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 생각되어 고민하며 계속 기도했다. 그러나 자석에 쇠붙이가 끌려가듯 끌려서 교우 열 명과 박요한 목사님, 위임목사님과 함께 10월 3일에 인도네시아로 떠나게 되었다.

자카르타에 도착하자 박흥신·남궁경미 선교사님께서 나오셔서 인도네시아를 소개해 주셨다. 2억 6천만의 인구 대국이자 국민의 86%가 회교도인 세계 최대 회교국가 인도네시아는 1만 8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우리의 여정은 강행군이었다.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탄 버스를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가기도 했으며, 하루 7~8시간을 버스로 달리기도 했다. 장장 2천 5백 킬로를 이동하여 박흥신·남궁경미 선교사님의 사역지인 고아원, 기독교 학교, 유치원을 탐방했다.

신용길 장로님, 마르쿠스 목사님, 정성진 위임목사. 마르쿠스 목사님에게 독약을 먹인 사람들은 목사님이 죽지 않자 그자리에서 개종했다. 마르쿠스 목사님은 다섯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하고 계신다

 

동티모르 난민들과 함께

주변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픈 다리를 끌고 이곳까지 오게 하시고, ‘건너와서 보아라!’ 음성을 들려주신 하나님의 뜻을 마지막 일정 <블리따르의 개종자 집회>에서 알았다. 그 집회에서 위임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8시간 내내 나는 동티모르 난민촌의 집회를 위해 기도했다.

집회 시작 전 준비 찬양을 할 때 프랑스 떼제공동체 예배에서 경험한 깊은 신비감에 휩싸였다. 특히 떼제의 금요일 밤 집회 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예배자들에게 임하시는 고요하나 광대하신 하나님, 모두를 압도하며 적시는 그리스도의 보혈, 온 우주에 편만하신 성령님의 임재하심에 휩싸였던 그 경험을 나는 그곳에서 다시금 강렬하게 느꼈다.

이 지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외롭고, 어려운 동티모르 난민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그곳에서 부드러우나 강한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님을 온전히 맞아들였다. 우리 일행 모두는 이 지상에서 가장 궁핍하기에 더욱 주님만을 바라보는 2천여 명의 동티모르 난민들과 뒤섞여 기도하고 춤추고 뛰놀고 찬양하며 예배드렸다.

 

딴떼뻬라 할머니

블리따르는 강성 이슬람 지역으로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고, 누가 예수를 믿는다면 독살하거나 죽여도 죄가 전혀 안 되는 관습법이 있는 곳이다. 블리따르에서 2천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기독교 집회가 있고, 경찰이 출동해 치안과 집회를 보호하고 돕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은 30년간 깊은 병에서 신음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에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딴떼뻬라라는 한 할머니의 개종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병 고침을 받은 할머니는 놀라운 이적과 기적의 예수를 증거하며 홀로 3천여 명을 전도했다고 한다.

이슬람 강성 지역에 기적이 일어나 기독교로 개종한 2천여 명이 집회를 갖기 위해 모였다

 

마루쿠스 목사님

마루쿠스 목사님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독살을 당할 뻔 했다. 독약을 먹었으나 죽지 않고 살아나 독약을 먹인 사람들이 놀라서 개종케 한 기적의 주인공이다. 목사님은 다섯 교회를 개척하며 날마다 놀라운 교회 부흥을 이뤄 가시지만 지금도 여전히 살해 위협을 받으며 사역하신다.

다섯 교회를 돌보는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가 아닌 차가 필요했는데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께서 650만원을 헌금하셔서 중고차를 구입하여 열심히 사역하시는 중이라고 하셨다.

 

박성후 집사님과 아내 밍리 집사

동티모르 난민촌 개종자 집회는 박성후 집사님과 아내 밍리 집사님 내외의 충성과 겸손한 헌신으로 더욱 부흥되며 굳건히 서 가고 있었다. 박성후 집사님은 처음에는 가난한 동티모르 개종자 몇몇에게 예배 후 식량을 드리는 섬김을 했으나 곧 50명이 되었고 모일 적마다 더욱 늘어나 자신들의 경제 규모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소명으로 여긴 박 집사님 내외는 우리가 함께 예배드린 날처럼 매월 집회 시 몰려오는 2천여 명의 난민들에게 쌀과 옥수수기름, 라면, 과자 등의 생필품 나눔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유치원에서 우리 일행에게 환영의 의미로 걸어 준 꽃 목걸이를 화관처럼 머리에 써 봤다

20대에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집회에서 선교적 삶과 헌신을 결단했던 나는 이제껏 성실히 그 약속을 이행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흥신·남궁경미 선교사님, 딴띠뻬라 할머니, 박성후·밍리 집사님을 보고 ‘나는 어떻게 선교적 삶을 살 것인가?’를 더 생각하게 되었고, 주 앞에 서기 전에 내가 할 일 두 가지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이 귀한 선교 여행에 동행한 교우들, 선교지 탐방 여행을 기획하고 후원하며 기도해 주신 온 교우들과 교회, 선교사님과 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현지 목회자가 한 환자에게 기도해 주고 있다. 뒤로 기도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동티모르 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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