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함을 위해 가지를 친다

신년특별기획
기도

기도의 성결
깨끗함을 위해 가지를 친다

글 조정민 목사(베이직교회)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켜 보면, 성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뛰쳐나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부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메모하거나 기억해서 나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가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지혜롭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는 자리

기도의 자리는 회복의 자리요 회개의 자리입니다. 변화할 능력을 받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삼사십 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도 바꾸지 못하고, 혹독한 상사도 바꾸지 못하는 내 본성을 뿌리째 바꿔 버리는 변화가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의 자리는 비전을 받는 자리입니다. 내 꿈과 야망이 자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비전을 받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크고 놀라운 구원의 긴 역사를 따라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에서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응답만을 구한다면, 주님의 음성이 굴절되고 왜곡 되어 들리기 마련입니다. 결혼이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이 되면, 그와 결혼하라고 하시는 건지 하지 말라고 하시는 건지에만 집중합니다. 아침마다 답을 주시길 기다립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말씀을 주고자 하시는데, 그 말씀은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만 듣기에 교회에 몇 십 년을 다녀도 근본적인 내면의 변화가 없습니다.

기도는 승리의 관문입니다. 그런데 기도로 무슨 싸움을 어떻게 이기겠다는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예수님이 어떤 분이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너무나도 쉽게 알려 주십니다.

 

열매 맺는 나무와 맺지 못하는 나무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 15:1)

예수님이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은 농부, 예수님은 농부 하나님이 심으신 포도나무라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과실수입니다. 과실수는 열매를 목적으로 하는 나무입니다. 나뭇가지나 밑동은 쓸모가 없습니다. 오직 풍성한 열매가 목적입니다.

포도나무는 키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긴 덩굴로 자라기에 기둥으로 받쳐서 세워 주지 않으면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나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나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십니다. 주님은 세상에 오실 때부터 행차하듯 요란하게 오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성도라는 열매, 교회라는 과실을 맺기 위해서 성육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중에서도 “참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매를 맺는 나무와 맺지 못하는 나무를 대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성도를 구별하는 손쉬운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무릇 내게 붙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 하게 하시느니라(요 15:2)

바로 열매로 구분하면 됩니다. 열매를 맺으면 진짜요 열매를 맺지 못하면 가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가지에 열매가 맺힙니까? 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열매는 가지의 능력이 아닙니다. 가지가 할 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도 병들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럴 때 농부가 가지를 잘라 버립니다. 병든 가지를 잘라야 다른 가지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지 노릇도 못하면서 붙어 있으면 다른 가지에 피해를 줍니다. 그러니 가지는 열매를 맺기에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것은 능력이 아니라 청결의 문제입니다.

 

승리하는 기도

주님도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사실, 교회는 찾아오는 사람을 다 받아서는 안 됩니다.

슬그머니 들어와도 다 받아 줘야 합니까? 성도들이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은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성도가 열매 맺기 위해서는 정결함이 요구됩니다. 농부와 포도나무, 가지와 열매, 이들의 관계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기준은 다름 아닌 ‘거룩’입니다.

우리는 능력이나 미모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중심이 거룩한가에 주목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레 19:1)라고 말씀하시지 “너희는 유능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속에 더러운 생각과 음란한 생각을 품고 있다면,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하고 화려한 코트로 휘감은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타락한 세상에서 구하는 헛된 허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도의 관심은 오로지 거룩함과 정결함에 있습니다.

승리하는 기도란 자신을 깨끗게 하는 기도입니다. 중심이 깨끗해야 주님이 주시는 형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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