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사용 설명서

%ec%98%81%ed%98%bc%ec%82%ac%ec%9a%a9%ec%84%a4%eb%aa%85%ec%84%9c_%ec%9e%85%ec%b2%b4고대 심리학《데 아니마》를 누구나 읽기 쉽도록 해석한 책
《데 아니마》는 자연과학과 생물학적 필치로 이루어졌지만 고대 심리학으로 분류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저이다. 이 고대 심리학 원전을 읽기 쉽도록 재구성한 책이다.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모든 일반인은 물론 뇌과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기독교인조차 ‘영혼에 관하여’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펼쳐서 보여준다. (데 아니마는 ‘영혼에 관하여’라는 뜻이다.)

‘살아서 숨 쉬는 영혼’에 관한 인문학 통찰
영양섭취능력, 감각능력, 운동능력, 욕구능력 등 영혼을 일종의 기능으로 이해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한 기본 명제들을 우리 현대인의 삶의 틀에 맞춰 석의해낸 저자. 영혼이란 알 수 없는 저 먼 하늘나라의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느끼고 움직이면서 체험할 수 있는 실체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삶의 실천서로 손색이 없다. ‘영혼사용설명서’인 셈이다.

프로필 >>>
저자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교수

저자는 인문학의 여러 분야를 전방위로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보수적인 테제들을 통하여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 전공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인문학 지평의 융합 속에서 성서신학을 연구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성과로서 이 책을 내놓았다. 한국기독교대학신학대학원협의회 소속 목회자로, ‘작은교회 세우기’ 모토로 설립한 미문(美門)교회를 5년째 섬긴다.
경원대학교에서 응용미술학을 전공하고 호서대학교 대학원에서 신약학을 전공했다. 청년 시절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심취하여, 한글로 된 성경 프로그램 보급이 미미하던 당시 ‘파워바이블’이라는 이름으로 MAC OS 운영체계와 WINDOWS PC 기반에서 구동되는 프로그램을 잇달아 개발하여 무료로 제공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산구조(특히 서체 시스템)의 발달단계에 나타나는 상징·기호체계와 미학의 중요한 연관성을 발견하여, 독자적으로 구축한 해석학 원리를 기반으로 한 성서신학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속된 영화 거룩한 영화》 (2017)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2016),《철학과 신학의 몽타주》(2015), 《자본적 교회》(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2011)가 있으며, 〈해체시대 이후의 POST SECULAR 새교회〉(2013), 〈새시대, 새교회 새목회 대상〉(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2011) 등의 논문이 있다.

발문 저자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년 마케도니아의 한 도시 스타케이라에서 출생하였다. 니코마코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부친은 의사였던 까닭에 자신이 선조에게 교육받은 것처럼 아들에게도 해부학 훈련을 시켰다. 이와 같은 훈련 과정에서 체득한 고도의 관찰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에 관한 통찰의 자양분이 되었다. 이른 시기에 양친을 여읜 아리스토텔레스는 18세에 아테나이의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하여, 그 학교의 설립자인 플라톤이 죽는 날까지 20여 년 간 수학할 수 있었다. 스승 플라톤은 그를 총애하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아이에게는 고삐가 필요하다.”
그의 탁월한 재능은 점점 스승의 철학적 입장과는 다른 차원의 통찰을 가져왔고, 심지어 스승의 이론들에 대해 비판적 경향을 띤 까닭이었다. 이 책의 대본이 되고 있는 《데 아니마》에 그런 입장이 선명하게 배어 있다. 그는 살아생전에 《범주론》, 《명제론》, 《분석론》, 《변증론》, 《시학》, 그리고 이 책의 대본인 《데 아니마》 외에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차례 >>>

저자의 서문 왜 아리스토텔레스인가? 4
일러두기 14
프롤로그 22

Chapter 1 영양섭취능력 | 나는 왜 먹는가? 28
Chapter 2 감각능력 | 나는 왜 느끼는가? 46
Chapter 3 운동능력 | 나는 왜 움직이는가? 100
Chapter 4 욕구능력 | 나는 왜 슬프고, 기쁘고, 즐겁고, 화나는가? 120
Chapter 5 사고능력 | 나는 왜 생각하는가? 136
Chapter 6 상상능력 | 나는 왜 상상하는가? 164
Chapter 7 윤리능력 | 나는 왜 바른가? 190

—INSIGHT 이원론 | 나는 둘로 비롯되었는가? 40
—INSIGHT 유물론 | 나는 물질에서 비롯되었는가? 94
—INSIGHT 유심론 | 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는가? 114
—INSIGHT 일체론 | 나는 현상에서 비롯되었는가? 132
—INSIGHT 심리론 | 나는 꿈에서 비롯되었는가? 158
—INSIGHT 뇌이론 | 나는 뇌신경에서 비롯되었는가? 182
—INSIGHT 영혼의 일곱 능력 vs 여섯 가지 심신이론 216

에필로그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하는 행복한 길 220
부록 《데 아니마》 발췌문 225

본문 중에서 >>>

• 영혼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데 아니마》는 내 강의의 참고문헌으로 처음 뽑힐 당시만 해도 가장 끝에 달아둔 부록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강의를 다 끝마칠 시점에서는 그것이 윤리·정치·심리·과학 등 그 모든 다면적 자기이해의 총아를 제시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 프롤로그 중에서

• 나는 왜 먹는가? ‘배가 고파서’라고 해도 틀린 답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영혼이 있기 때문에’라는 표현이 옳다. 배고픔보다 앞서 선구조 속에서 영혼이 ‘영양섭취’라는 운동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왜 먹는가? 중에서

•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소 물질의 경우 그것을 타게 하는 다른 매개체 없이는 스스로 연소되지 않는다는 개념 속에서 그 감각 구조의 원리를 제시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 감각기관들은 언제나 스스로 타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뜨거움을 느끼는 감각이 있다면 어느 순간에 뜨거움이 발생하는 것일까? – 나는 왜 느끼는가? 중에서

• 다른 감각들에 있어서 인간은 많은 다른 동물들보다 뒤처지지만 촉각에 있어서는 훨씬 압도적이다. 인간은 스스로는 시각에 능한 줄 알지만 촉각이 훨씬 정교하며 압도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들 가운데서 가장 잘 이해를 한다. – 나는 왜  느끼는가? 중에서

• 우리가 삶 속에서 직조해 나가는 이미지들의 진정한 의미는 인식의 문이 열려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한, 그 운동능력으로서의 상상과 욕구는 한 마리 거미로서 우리의 다리를 가득 매우고 있는 중추신경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나는 왜 움직이는가? ‘아라크네의 비밀’ 중에서

• “지성은 욕구 없이 운동을 유발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433a 20)고 한 대목을 그들은 놓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다. – 나는 왜 슬프고, 기쁘고, 즐겁고, 화나는가? 중에서

• 아직 돌 위에 돌 한 단이라도 남아 있는 상태라면 등장할 수 없는 개념이 바로 이 엘피스로서의 희망 개념이다. 판도라의 항아리에서 가장 마지막에, 그 아무것도 빈 항아리 상태에서 솟구친 것이 바로 엘피스/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믿음 희망 사랑 중에’라고 했던 것이다. – 나는 왜 생각하는가? 중에서

• 상상은 그렇게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감각과 유사하되, 동물들이 지성을 갖고 있지 않은 것과는 달리 우리의 지성은 열정이나 질병이나 잠으로 감춰지기 때문에, 그 외 동물들은 상상을 통해 빈번하게 운동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상상은 운동의 일종이다.  – 나는 왜 상상하는가? 중에서

•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만이 갖는 이 오피니언 능력에 대해 설명하기를 “믿지 않으면서 의견이 형성되는 의견이란 불가능하기에 의견은 믿음을 수반하는 것”(428a 19-21)이라고 한 것이다.  – 왜 상상하는가? 중에서

• 그러나 실상 근대 사상가들의 영혼에 관한 이해는 중세 기독교 세계관의 막대한 양분을 먹고 자라났으며, 중세의 세계관은 역으로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어거스틴에 의해 기초가 놓였다. – 나는 왜 바른가? 중에서

• 봉화가 피어오르는 것을 만지지도 않고 감각하는 것처럼, 그 감각을 통해 전쟁을 인식하는 것처럼, 최선의 최고의 윤리를 최선과 최고의 어떤 곳에 다다르게 하는 관문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은 다르다. – 나는 왜 바른가? 중에서

• 욕망은 현재를 위해 행동할 것을 명령하지만 지성은 미래를 위해 그 행동에 저항할 것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욕구는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즐거운 것이 절대적으로 즐겁고 절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 나는 왜 바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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